"새벽 오픈런 해도 구경 못해서 '유니콘 백', 재고 찾아 전국 순례"'슈퍼 갑' 샤넬 앞에 고생은 고객 몫…'오픈런 전시' 멈춰야 할 때샤넬 클래식 플랩백(샤넬 홈페이지)© 뉴스1(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최근 명품족 사이에서 가장 핫한 제품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 마저 거창한 '유니콘 백'인데요. 뜨고 있는 브랜드나 유니콘이 그려진 가방은 아닙니다. 물론 유니콘처럼 뿔이 달린 가방은 더더욱 아닙니다.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처럼 실제로 보기 어렵고 구할 방법조차 없다는 명품 가방에 붙은 별명입니다.유니콘 백으로 선정되는 기준은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 회원들의 '공감' 정도에 달려있습니다. 연일 오픈런(매장 개점 전 줄서기)에 나서도 가방을 구경조차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면 유니콘 백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합니다. 샤넬 '가브리엘백팩'과 '코코핸들'이 대표 유니콘 백으로 통합니다. 실제로 볼 수 없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어느 명품들보다 분명해 보입니다.전국이 명품 열풍에 휩싸인 최근 들어선 유니콘 백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유니콘 백을 찾아 전국 샤넬 매장을 순회하는 고객들이 생겼을 정도죠. 온라인 명품 커뮤니티 회원들은 새 상품 입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지역별로 재고 현황을 공유하느라 바빠집니다. 가까운 샤넬 매장을 오갈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알려주는 '꿀팁'이 오가기도 합니다. 매일 새벽 매장 앞에 고객들로 줄을 세우던 샤넬이 고객을 원정출장 보낼 정도로 콧대가 높아졌습니다.© News1 이지원 디자이너'손님이 왕'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샤넬을 이해하기 위해선 샤넬만의 특별한 운영 정책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샤넬을 15년 넘게 이끈 브루노 파블로브스키 패션총괄 사장은 지난 2019년 국내 매체와 인터뷰에서 의류와 핸드백을 어떤 온라인 플랫폼에서도 판매하지 않는다는 철학을 밝혔습니다. 샤넬 브랜드는 제품을 직접 대면하고 전문가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죠. 샤넬과 함께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르메스와 루이비통이 온라인에서도 제품을 판매하는 행보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샤넬이 국내에서 더욱 귀한 대접을 받는 배경엔 샤넬과 '공생' 중인 백화점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백화점은 1층 가장 좋은 자리를 명품 브랜드에 내주고 특별 관리를 하기로 유명합니다. 업계 관계자는 "3대 명품 브랜드가 입점했을 때 해당 점포가 얻는 집객 효과와 고급 이미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며 "최근 오픈런 대란으로 점포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할까 우려스럽지만 '슈퍼 갑'(甲) 샤넬의 운영 방침에 개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서울시내 한 백화점에서 시민들이 샤넬매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2021.6.2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백화점 비호아래 샤넬이 오프라인 정책을 10여년째 고수하는 동안 새벽 오픈런을 위해 질주하고 원정 쇼핑을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고생은 오롯이 고객들의 몫이 됐습니다. 이제는 샤넬이 오픈런을 하나의 노이즈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고객의 속 타는 마음과는 반대로 샤넬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 9295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34% 증가한 1491억원을 달성했지요. 샤넬 글로벌 매출액의 10% 가까운 매출이 한국에서 발생했다고 합니다.물론 샤넬이 오픈런 과열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샤넬코리아는 연락처를 남긴 소비자 순서대로 문자메시지를 보내 매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고객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문자 예약 순번을 빠르게 받기 위한 오픈런이 여전하다는 사실이지요. 샤넬코리아의 소극적인 대응이 문제로 지적되는 대목입니다.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날 밤부터 긴 줄을 늘여 세우던 세계적인 기업 애플도 코로나19 유행 이후 온라인 사전 예약·픽업 방법으로 바꾼 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릅니다.샤넬은 지난 1일 올해 두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대표 인기 상품 '클래식 플랩백 라지'는 942만원에서 1049만원으로 하룻밤 사이 가격이 100만원 넘게 올랐지요. 며칠 전 가격 인상 소문이 퍼지자 오픈런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더운 날씨에도 샤넬 매장 앞에 줄을 선 고객들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쇼핑 경험은 '득템'의 희열을 안겨주지만 반대로 좌절을 맛보는 소비자들을 더 많이 양산하고 있는데요. 어느 순간 안티로 돌변할 수 있는 소비자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순간 추락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 셈인데요. 샤넬이 전시해야 할 것은 고객이 아니라 상품입니다. 브랜드 철학이 고객에 우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볼 때가 아닐까요.